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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 김세진, 이재호 열사 투쟁 40주년 학술토론회

2026-04-29

[김세진·이재호 열사 투쟁 40주년 학술토론회]

“영원한 청년 김세진·이재호가 시대에 묻다!”


김세진, 이재호 열사 투쟁 40주년을 맞이하여 개최딘 학술토론회에 평화너머가 공동주최 단체로 참가했습니다.  토론회에서는 두 열사가 염원했던 반미자주 운동의 의미와 지난 40년의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돌아보고, 여전히 불평등한 한미동맹의 굴레에 묶여 있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진단, 우리의 과제는 무엇인지 모색하였습니다. 


🔶일시 : 2026년 4월21일(화) 15시

🔶장소 : 국회도서관 대강당

🔶주최 : 국회의원 김종민, 김세진·이재호 기념사업회, 서울대학교 민주동문회, 전국 민주동문회 협의회, 전대협 동우회, 추모연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 한겨레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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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83학번인 김세진, 이재호 열사는 1986년 4월28일 오전 9시, 서울 신림사거리에서 ‘반전! 반핵! 양키고홈!’, ‘양키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결사반대’를 외치며 산화해갔다. 

1986년 대학생들은 군 조직의 일부로 취급했던 시기였다. 1학년 때는 내무반 교육과 사격 훈련을 받았고, 2학년 때는 실제 전방 부대에 들어가 병영문화를 강제로 체험하는 ‘전방입소 훈련’을 받았다. 전방입소 제도는 대학을 군 구조의 일부로 편입시킴으로 해서 대학사회의 비판 의식을 말살시키려는 억압장치였다. 

서울대 학생들은 4월28일부터 5월3일까지 예정된 서울대 85학번들의 전방입소 거부 투쟁을 결의하고, 4월16일에는 총학생회장 김지용을 위원장으로, 이재호 열사를 공동부위원장으로 하는 ‘전방입소훈련 전면 거부 및 한반도 미제 군사기지화 결사저지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4월28일 입소거부 투쟁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 낌새를 눈치 챈 학교 당국과 사전 정보를 입수한 경찰에 의해 학생들이 준비하고 있던 농성계획이 무산되었다. 결국 400여명의 학생들은 입소 당일인 4월28일 아침 9시, 학교와 가깝고 경찰이 봉쇄하기 어려운 신림 사거리에서 연좌농성을 벌였다. 당시 김세진, 이재호 열사는 건물 옥상에서 집회를 지휘하고 있었다. 경찰은 학생들을 무차별로 구타한 뒤에 연행하기 시작했고 건물 옥상까지 올라왔다. 두 열사는 시너를 온몸에 끼얹으며 ‘가까이 오면 분신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실적 세우기에 급급한 경찰은 두 열사에게 다가갔고 열사들은 불을 당겨 몸에 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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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토론회는 변학문 평화너머 정책연구소 소장의 사회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남주 성공회대학교 교수(반미·자주 투쟁 40년의 회고와 평가)와 △장창준 한신대학교 한반도평화학술원 특임교수(향후 자주 평화운동의 방향과 과제), △박아름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자주평화운동의 저변 확대와 다각화 : 기후위기, 청년운동 등)가 발제자로 주제발표를 하였고,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나원준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최은아 자주통일평화연대 사무처장, △전지예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 공동대표, △정단우 서울대학교 사회대 학생회장이 지정토론자로 참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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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발제자인 이남주 교수는 <반미·자주 투쟁 40년의 회고와 평가>를 발표했습니다. 열사들의 분신투쟁에 대해 재야와 정치권의 주요 인사들이 발표한 성명을 분석하며 김세진·이재호 투쟁을 되돌아보고 그 투쟁의 현재적 의미를 평가했습니다. 당시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열사들의 투쟁과 시대적 한계를 짚고, 과거에나 지금에나 한미동맹이라는 현실을 대면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현재에 대한 성찰과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당시의 구호 “반전반핵, 양키고홈”, “양키의 용병교육 반대” 등이 당장 사회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는 점은 투쟁주체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냉전반공 이데올로기의 지배를 받아온 한국 사회에서 문제를 예각적으로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념적 급진주의와 함께 자신의 주장을 알리는 수단이 매우 제한적이었던 상황도 수사적 차원에서도 다소 ‘과격한’ 접근을 하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투쟁 주체들의 이러한 의도와 당시 사회적 수용성 사이의 격차가 컸다. 위 성명이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기 어렵게 만든 주요 원인도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당시 감각에서 새경하게 받아들여진 일부 표현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이 투쟁이 추구한 것은 자주권의 확보는 지극히 정당한 요구였다.

한국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자주의 문제를 주요한 의제도 제기해야 하고, 그에 기초해 한국의 안보와 외교 정책을 조정해가야 한다. 어떻게 보면 지체된 과제일 수도 있다. 그 필요성이나 절박성은 당시보다 더 커진 면이 있기 때문에 더 폭넓은 논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이제는 충격 요법에 의존하기보다 이러한 공간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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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발제자인 장창준 교수는 <향후 자주 평화 운동의 방향과 과제>를 발표했습니다. 중동 전쟁과 국제질서가 해체되었다는 문제인식 속에서 2008년 금융위기와 러우전쟁 등을 거쳐 현재의 국제질서는 규범에 의한 통제가 불가능한 ‘전쟁의 시대’로 진입했기 때문에 생존전략이 필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한국이 처한 다중 안보 위기와 오히려 안보를 위협하는 한미동맹의 현주소를 고려할 때 국익과 안전에 기초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평화주권 담론의 확산’을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현시기 반미 담론의 현대화 과정에서 ‘평화 주권’은 현실 적실성을 갖는 기제일 수 있다. 평화 주권의 본질은 우리 삶을 규정하는 평화와 전쟁의 문제를 우리 스스로 결정하는 데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외부적 요인(대만 연루, 다영역전 편입 등)을 능동적으로 제거하고, 평화를 촉진하는 요소(남북 긴장 완화, 실리적 다변화 외교)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미국에 귀속된 안보 결정권을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 단순히 동맹 체제에서 벗어나는(탈동맹) ‘소극적 평화주권’에서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를 거부하고 다극화된 국제 질서 속에서 우리만의 독자적 위치를 점하는(중립화, 다극질서) ‘적극적 평화주권’으로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 

‘전쟁의 시대’를 맞이하여 미군 기지에 대한 관점의 근본적인 전환이 요구된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을 항해하는 선박들의 유일한 생존 전략은 역설적으로 “미국 군함으로부터 가급적 멀리 대피하는 것”이다. 동맹의 보호권 안에 있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는 이 역설은 한반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군 기지로부터 물리적·전략적 거리를 확보하는 것이 생존의 핵심이나, 한반도 지형상 이는 기지의 영토 밖 이전 없이는 불가능한 과제이다. 주한미군 전력과 무기 체계는 미국의 전략에 따라 언제든 타 지역으로 차출되거나 이전될 수 있다. 이를 통제할 수 없다면 한국은 타국을 향한 미국의 ‘전초 발진기지’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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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발제자인 박아름 교수는 <자주 평화 운동의 저변 확대와 다각화: 기후 위기, 청년운동 등>을 주제로 발표했습니다. ‘현재의 청년세대는 기성세대를 존경하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하며 1980년대 반제민족주의 담론이 목표했던 ‘통일운동’이 지연된 원인을 청년세대에게서 찾는 기성세대를 비판하며, 그 원인을 서구중심주의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뢰를 갖고 있는 청년세대를 언급하며, 1980년대 최상의 목표였던 통일운동은 아직 진행중이라는 이야기로 발표를 마무리 했습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득표율도 대부분 50%를 넘기지 못했는데, 통일에서 민족담론이 40% 내외의 지지를 받는 것이 그렇게까지 문제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세대를 비판하기 위함인가? 그 세대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함인가?

청년세대는 기성세대를 존경하는가? 과거의 사실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분단의 지속원인을 청년의 무관심이라 세뇌하고, 청년의 피해자 성을 의심하거나 왜곡하고, K-방산을 지속 및 확산하고 있는 사람들을 존경하기는 어렵다. 물론 그 근본원인은 섣부른 탈식민화 과정에서 발생한 해체되지 못한 서구중심주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분단’은 여전히 서구중심주의의 해석을 해체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해자트라우마 중심적 해석과 비난에 일정 정도 청년들이 순응하는(혹은 무관심한) 이유는 나름의 신뢰와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고, IMF와 국제금융위기를 극복하고, 촛불혁명과 빛의 혁명을 함께한 기성세대에 대한 신뢰가 있다. 그리고 어떤 문제도 결국은 ‘상식’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토론자 4명의 지정토론이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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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정욱식 소장은 미국 패권 ‘변질’ 시대의 반미·자주를 이야기하며 미국의 패권이 “글로벌 차원에서는 약해지고 있고 이 과정에서 다극화가 고개를 들고 있지만, 미국은 자신의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다고 믿는 지역과 국가를 상대로는 더 난폭하게 군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를 패권의 종말이 아니라 패권의 변질이라고 규정하며 분단체제 극복의 새로운 상상력과 실천이 핵심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나원준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나원준 교수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 성격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이 필수적이라며, 한국경제의 종속성에 대한 과거 80년대 생각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는 지금의 주류 운동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변화된 여건에서 우리 운동을 설득시키고 민중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공중전을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한다며 우리 시대에 맞는 한국 사회 변혁 과제, 체제 전환 과제, 반제국주의 및 생태주의 관점과 노동계급 중심성에 충실한 사회경제 분야 실천 과제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최은아 자주통일평화연대 사무처장

최은아 처장은 열사 투쟁 40년을 맞아 자주평화 운동에 대한 소고를 이야기하며 40년 전 열사의 문제제기가 현시점까지도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약탈적 양태로 드러나고 있는 미국의 대한국 정책에 맞서는 것, 현안과 아울러 구조와 담론을 제시하는 것, 중심 동력의 구축과 저변을 확장하는 것, 자주로 포장된 대미 종속을 경계하는 것을 과제로 제시하였습니다.  


△전지예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 공동대표

전지예 대표는 ‘청년들은 새 질서의 주인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던지며 두 열사의 투쟁을 온전히 계승하지 못한 결과에 대해 착잡함을 표현했습니다. 전쟁의 시대, 한미동맹에 대한 문제제기는 더 이상 급진적이지 않고 상식적이라며 문제는 대중적 운동이고 그중에서도 청년에 주목했습니다. 신자유주의 직격타를 맞은 청년들에게 반미는 생존의 문제라며, 차별과 혐오에 길들여진 청년들이 이전 세대처럼 혁명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원인을 진단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변화하는 지금, 오히려 청년들에게 찾아온 위기이자 기회라며 해볼 만한 싸움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를 위해 청년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을 첫 단계로 제시하고, 두 열사의 시대정신을 계승하는 청년들을 응원해달라며 당부의 말을 전했습니다. 


△정단우 서울대학교 사회대 학생회장

정단우 학생회장은 ‘두 열사와 함께 투쟁한 선배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밝히며 열사정신 계승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어려운 대학생들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20대 대학생들은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며 최근 미국 패권에 의해 발생하는 문제들조차 주식으로 연결되는 현실을 설명했습니다. 


“반전! 반핵! 양키고홈!”

토론회 참가자들은 두 열사의 투쟁을 다시 새기며 구호를 다시 외쳤습니다. 



평화너머는 '평화에 대한 자주적인 결정권, 평화주권'의 가치를 지향하며 한미동맹의 재정립을 위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김세진, 이재호 열사가 염원했던 '반미와 자주'라는 시대정신은 평화주권으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평화너머는 두 열사의 고귀한 투쟁을 기억하며, 새로운 시대를 밝혀나가겠습니다.